파리-브레스트-파리
Paris–Brest–Paris
파리-브레스트-파리(PBP)는 장거리 사이클링 이벤트입니다. 이 행사는 1891년 파리에서 브레스트까지, 그리고 파리로 돌아오는 1,200km(750 마일)의 자전거 경주대회로 출발했습니다. 행사의 출발은 Saint-Quentin-en-Yvelines에 위치한 National velodrome에서 진행되어 왔으나 2019년 PBP는 출발 장소가 랑부예 (Rambouillet), Rambouillet Castle 공원에 위치한 Bergerie National 로 변경되었습니다.) PBP는 가장 오래된 자전거 이벤트 중의 하나로서 여전히 정기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이벤트는 Catford CC Hill Climb 입니다.) 경주대회로서는 1951년에 마지막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가장 최근에 진행된 PBP는 2015년 8월 16일부터 8월 20일까지 진행되었습니다.
1931년에 아마추어 사이클리스트들은 프로 선수들과 분리되었으며 그에 따라 2개의 독립적인 장거리 자전거 투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이클리스트들이 개인자격으로 타는 브레베(Brevet)입니다. 브레베의 목표는 90시간 이내에 도착하는 것이며 비경쟁 대회입니다. 이 행사는 매 4년마다 개최됩니다. 다른 하나는 사이클리스트들이 그룹으로 참가하며 매 5년마다 개최되는 오닥스(Audax)입니다. 그래서 1931년에는 총 3개의 이벤트가 동일한 경로를 공유하였습니다.
Audax는 Union des Audax Francaises에 의해 조직되며, Brevet는 Audax Club Parisien에 의해 조직됩니다.
브레베
모든 브레베는 라이더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며 라이딩하는 자급 자족을 중요시합니다. 라이더는 코스를 따라 어디에서나 보급품을 구매하지만, 체크포인트(CP)를 제외하고는 전동 차량의 지원이 금지됩니다. 90시간의 시간 제한이 있으며 시간은 계속 흘러가므로 많은 라이더들은 가능한 잠을 적게 자고 때로는 길 옆에서 몇 분 정도 있다가 라이딩을 진행합니다.
참가자들은 먼저 PBP와 동일한 연도 내에 개최되는 브레베 시리즈(란도너링 이벤트)를 반드시 완주해야합니다. 호주와 오세아니아의 기간이 다르기 때문에, 라이더들은 여름(북반구의 겨울)에 자격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의 브레베 시리즈는 200km, 300km, 400km, 600km로 구성됩니다. 각 브레베는 거리가 더 긴 브레베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2007년 이전에는 자격을 얻기 위해 최단거리의 브레베부터 최장거리의 브레베까지 완주해야 했습니다.
한 때 PBP는 자전거 성능의 잠재력을 어필하기 위해 프로 사이클리스트들이 경쟁하는 레이스 대회였으나, 현재의 PBP는 일반 라이더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PBP는 계속해서 경쟁력있는 일반 라이더들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PBP는 경주대회가 아니지만, 가장 처음 도착한 라이더에게 트로피와 명예를 수여합니다.
컨트롤 (CP)
2015년 PBP에는 아래의 도시에 컨트롤(CP)이 위치했습니다. St Quentin 와 Brest를 제외한 모든 컨트롤은 서쪽과 동쪽 양 방향에서 방문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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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int-Quentin-en-Yvelines (start and fin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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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reu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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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rtagne-au-Per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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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llaines-la-Juh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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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uge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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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nteni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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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uedill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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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oude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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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int-Nicolas-du-Pél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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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rhaix-Plougu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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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rest
(주의: 2019년 PBP의 경우, Rambouillet가 출발점/완주점이 될 것입니다.)
PBP의 역사
Le Petit 저널의 Pierre Giffard가 첫번째 파리-브레스트-파리를 개최했습니다. 이후 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파리-브레스트-파리는 가장 오래된 장거리 사이클링 이벤트로써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1891년
통고무 타이어를 사용하는 하이휠 바이크(앞바퀴 위에 올라타는 구형 자전거)시대에서 마름모꼴의 안전한 프레임과 고압의 타이어를 사용하는 시대로 변하는 과정에서, 파리-브레스트는 자전거의 내구성을 테스트하는 시험의 장이었습니다.
Giffard는 “Jean-sans-Terre”라는 사설을 통해 이벤트를 홍보했으며 그는 자신의 음식과 옷을 가지고 다니며 자급자족하는 라이더들에 대해 글을 썼습니다. 라이더들은 대회 기간동안 같은 자전거를 타며, 오직 프랑스인만 참가할 수 있었고 총 207명이 참가하였습니다.
첫 파리-브레스트(1891)는 Michelin의 Charles Terront와 Dunlop의 Jiel-Laval이 선두 경쟁을 벌였습니다. Terront는 3일째 밤에 자고있던 Jiel-Laval을 꺾고 71시간 22분의 기록으로 우승하였습니다. 두 라이더 모두 플랫 타이어를 수리하는데 한 시간 정도 걸렸지만, 통고무 타이어를 사용한 라이더들보다 더 유리했습니다. 결국 첫 파리-브레스트는 207명의 참가자 중 99명이 완주했습니다. 그 경주대회는 Le Petit 저널의 판매 증가에 큰 성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하지만 주최측이 파리-브레스트를 10년 간격으로 개최하는 것에 합의함에 따라 유통량이 감소했다.
1891년 Quardricycle (마차 형태의 자전거)
아마도 가장 특이한 참가자는 Auguste Doriot와 Louis Rigoulot이 운전하는 가솔린 동력의 Peugeot Type 3일 것입니다. 자전거의 내구성과 성능을 공개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Armand Peugeot는 Pierre Giffard에게 코스 관찰과 심판관이 포함된 그의 네트워크를 통해 진행하도록 설득했으며, 거리는 이전의 차량보다 3배 더 많았습니다. Valentigny에서 Paris 까지 3일간의 여행을 마친 후, 그들은 자전거 뒤에서 바로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첫째날 200km, 둘째날 160km를 달렸으나 Morlaix 근처에서 기어 고장으로 24시간을 허비했습니다. 현지에서 구두 수선공의 도구를 이용해 수리를 미친 뒤 그들은 어둠이 내린 브레스트에 도착하여 많은 관중들과 지역의 Peugeot 자전거 딜러들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비교하자면, Doriot과 Rigoulot이 브레스트에 도착했을 때 Charles Terront와 Jiel Laval은 이미 파리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다음날 그들은 파리로 출발하여 자전거를 탄지 6일 후에 여행을 마쳤습니다.
1901년
1901년 파리-브레스트는 Le Petit Journal 뿐만 아니라 Henri Desgrange가 편집하는 L’Auto-Velo의 후원을 받았습니다. 1901년에 처음으로 프로선수들은 “Touriste-routier” 그룹(65세의 라이더가 200시간 만에 완주)에서 분리되었습니다. 신문들은 파리 언론에 전달하기 위해 전신 시스템을 조직했으며, 대중들은 112명의 다른 프로선수들과의 레이스에서 52시간 만에 우승한 Maurice Garin의 업적을 지켜보았습니다. 너무 많은 신문이 팔려서 L’Auto-Velo의 Géo Lefeebre가 더 큰 레이스인 Tour de France를 제안했습니다. Henri Desgrange의 지휘 아래, 1903년에 첫 번째 레이스가 열렸습니다.
1911년
다음 파리-브레스트는 1911년에 개최되었으며, 솔로 라이딩 보다는 팩 라이딩으로 진행되었습니다. 5명의 라이더들은 거의 마지막 컨트롤까지 함께 있었고, Emile Georget은 Ernest Paul에서 팩을 벗어나 마침내 50시간 13분의 기록으로 도착했습니다.
1921년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개최된 1921년 PBP는 43명의 프로선수와 65명의 투어리스트가 참가하여 소규모로 개최되었습니다. Eugène Christophe and Lucien Mottiat가 경쟁하여 결국 Mottiat이 55시간 7분의 기록으로 승리하였습니다.